잠식적 인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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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식적 인간들 TingTong 13 Piano "엄마아." "응?" "엄마, 이거 바바." 태형의 집에 들어온 지 보름 정도 된 즈음. 설이 거실에 놓인 그랜드 피아노를 보며 눈을 반짝였다. 며칠 전부터 저 앞에서 서성이더니 아무래도 두드려 보고 싶은 모양이다. 그래서 난 보던 책을 덮고서 피아노로 다가갔다. "설이 이거 뭔지 알아?" "삐아노오." "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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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식적 인간들 TingTong # 심야 영화 진부한 이야기다. 라고 언젠가의 누군가가 말했으나, 나에겐 아니었다. 적어도 나에겐 기억에 새겨져 지워지지 않을 정도의 이야기니까. 그건 10년도 훨씬 더 지난 이야기. 내가 16살일 적의 이야기. 남들 말하는 사춘기였는지도 모른다. 그즈음의 나는 평소보다 어머니란 인간이 싫었으니까. "어머, 도련님 일어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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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식적 인간들 Ting Tong 12 약속 "너는 날 언제까지 쫓을 셈이었어?" 한바탕 울고 난 후, 침대에 드러누운 내가 태형에게 물은 말이었다. 불조차 켜지지 않은 어두운 방. 그럼에도 난 정말 오랜만에 내 옆에 누운 김태형을 볼 수 있었고, 그게 또 실감 나지 않아 눈물이 한 방울 흘렀다. 그러자 태형이 흐르는 방울을 닦아내며 말했다. "내 눈앞에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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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식적 인간들 Ting Tong 11 마음의 준비 후비적후비적. 순간 귀가 간지러워 긁었다. 뭐야, 진짜. 누가 내 얘기 하나. 난 계속해서 귀를 긁으며 설이에게 귀마개를 씌워주었다. "설아. 오늘 하민이랑 하민이 이모랑 놀 건데 괜찮아?" "웅. 갠차나." "아빠 오늘 일 있어서 잠깐 못 봐. 그래도 괜찮지?" "언제 오는데에?" "설이 저녁 먹기 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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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식적 인간들 10 3____4 "엄마아, 이거! 이거어!" "와아. 눈사람을 또 만들었네." "웅! 이건 엄마. 이건 설이. 이건 이모 함머니." 꼬맹이 김설이 작고 통통한 손으로 울퉁불퉁한 눈덩이 세 개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게 눈사람이었군. 그보다 저 뿌듯하다는 표정 좀 봐. 귀여워 죽겠네. 난 그런 아이 모습을 정신없이 사진으로 남기며 말했다.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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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식적 인간들 TingTong 9 홀로 "회장님……!" 수행원 하나가 아파트 현관을 통해 들어온 여성에게 달려간다. 그의 얼굴은 조금 사색. 그리하여 회장님이라 불린 여성이 코앞에 다가오자 아예 허리가 90도로 꺾인다. 그러자 그녀가 고양이 눈을 날카롭게 올리며 묻는다. "무슨 소란이야, 이게." "저, 그게……." 남자가 우물대는 순간, 쨍그랑. 무언가 ...

잠식적 인간들 TingTong 8 균열 "이혼 소식은 들었니?" "네, 회장님." 여긴 언젠가의 고급 레스토랑. 온통 화이트로 둘러싸인 이곳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때 묻은 법 없이 깨끗하기만 하다. 예전엔 이곳 모든 게 사치품이라 제대로 식사조차 못 했는데, 근래는 꽤 태연히 행동할 수 있게 되었다. 얼마나 태연하냐 하면, 회장님과 단둘이 독대해도 괜찮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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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식적 인간들 7 역한 순간 "몰랐는데, 아저씨도 참 대단하세요." "……." "아. 하긴. 그러니까 우리 어머니의 다섯 번째 남편이 된 거겠죠?" 태형은 그리 말하며 웃었다. 여긴 태형의 앞으로 된 청주의 한 별장. 종강하고 곧장 내려와서 벌써 한 달이 지났다. 며칠 전, 펑펑 내린 눈으로 하얗게 덮인 이곳은 아름답다 못해 절경이다. 그 아름다운 곳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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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식적 인간들 6 껍데기 평생 믿어왔던 무언가가 변하다니. 따라가기 벅차다고나 할까. 하지만 그게 내 신체에 대한 일이다 보니, 적응은 금방 됐다. "오메가 맞네요. 그것도 열성이요." 태형이 비밀리에 데려온 의사가 내게 내린 판정이었다. 그는 내가 베타에 가까울 정도의 열성이라 말했다. 하지만 히트사이클에 나온 페로몬 양은 우성과 다름 없다더라. 발현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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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식적 인간들 5 라일락 모든 게 평소 같아서 참 다행이었다. 며칠 전 회장님과의 일이 어느 정도 잊혀질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저택에서 돌아온 당일은 끔찍했다. 그날 밤. 잔뜩 예민해진 우린 몇 번의 날 선 말을 내뱉었고, 조금 감정이 상했으나, 따로 잠들진 않았다. 항상 그렇다. 신물 날 정도로 싸울지언정 잠은 무조건 함께 잤다. 그래서 난 내 예감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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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식적 인간들 3.5 "지금은? 지금도 나?" "아, 안 나! 저리 가, 쫌!" "아니, 잘 맡아 보라니까. 석진아, 여기. 여기 맡아 봐." "아무 냄새도 안 난다고! 몇 번 말해!" 이게 바로 나와 태형이 일주일째 반복하고 있는 대화이다. 그래. 정확히 일주일. 내가 별채로 태형을 찾아갔을 때. 내가 그와 몸을 겹쳤을 때 났던 겨울나무 향. 그걸 맡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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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식적 인간들 3 겨울나무 "김태형 어디 있어요?" 미치겠네, 진짜. 결국 묻고 말았다. 찾지 않으려 했는데 끝내는 찾고 말았다. 하지만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잖아. 그래서 삼 일 동안 눈만 끔뻑인 내가 가정부 아주머니께 여쭌 말. 거의 1년을 봐온 그녀는 전에 없이 곤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말하길. "아마 별채에 계실 ...